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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변의 숲 숲의 나무일까 알 수 있다면 더 다가갈 수 있을까 아니야 도망가야 해 멈춘 것의 속도를 알 수 있을 리 없지 달이 밝을수록 깊은 숲엔 그림자가 짙고 높은 곳에 오르지 않으면 숲은 볼 수 없으니발이 떨어지지 않아 새벽에만 우는 잎의 이름은 무엇일까 평생 만나본 적 없는 이의 등본을 떼어보다 가고 싶지 않은 입구에 닿아버리는 것처럼 빛나지 않는 윤곽 가죽이 주어진 적이 없는 쇳물처럼 끝일지 시작일지 모를 나무들의 배치어제는 숲의 숨구멍을 찾았다 손을 땅에 짚고 귀를 대었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갑작스런 온기에 숨이 멎은 듯 소음 하나 없이 벌레 숨소리마저 빨아들인 채 이곳은 너에게 어울리지 않다고 차마 떨어지지 않은 입을 쭉 내밀어왔네 저 웅크린 몸에 손이 있을까 지나야만 갈 수 있는 곳은 자꾸만 죄를.. 2018. 8. 18.
돌잡이 가끔 네발동물의 척추를 가지는 날이 있어 몇 번을 두 발로 선다 앞발은 어디다 둘지 모른다 들어올려야 하는 허리 두 발로 선 게 아니다 네 발로 서선 두 발이 남은 것이다 무게가 실려 혹은 무게인 채로 몸을 기댄다 휘둘리는 척추 들기 전에 밀거나 짚었을 것 어쩌면 태초의 돌잡이란 없는 것 오래 누우면 바윗불 등에서 튀어오르듯 허리 위에 잡을 것을 두곤 손이 나가길 바라본다 나는 걷고 기울여 쥘 줄을 모른다 2018. 8. 18.
관의 논리 창자가 만들어내는 미지 위는 장의 한 골목 나무는 우듬지까지 물을 길어 올리고 공장에서 동물원까지 뜨겁게 녹은 동전물이 부어지는 주형 일단 흘려 넣고 나면 흐르지 않은 것도 흘리기 위해 탄생하는 생의 지름 지름의 생 충전되는 모든 선들이 지르는 비명 맞지 않는 음정도 아빠쇼나또 막대의 성탄 손톱 사이로 새는 피를 보면 문득 어디로 가고 있는지 선명해진다 잔흐름 하나 없이 썩지 않는 강 낮고 빠르게 열리는 관 속에서 관다발이 좁은 방을 횡단하고 있다 위로 아래로 바닥의 바닥으로 2018. 8. 18.
잠시 안전한 시간 철물점에 갔다가 너트 대신 무화과빵을 사서 돌아오던 밤 이레 후 뜬 달의 부리는 짧았고 집으로 올라가야만 하는 길 나무들이 색을 지키고 섰다 무심코 알고 있다고 말할 때 몸피의 옅은 테두리가 보인다 별들은 모두 가질 수 있었지만 모든 것이 될 수는 없었다 팽창하는 법칙들 물병이나 사자일수도 천칭이거나 쌍둥이일수도 있었지만 실은 파편도 조각도 아닌 거라고 다만 피부일 거라고 평범하게 벌벌 떨며 그리는 거라고 달빛은 언제나 발바닥을 넘어가고 빛을 한 바닥 밟고 진흙 같은 춤을 춘다 어둠 속 갈매기는 날개를 가지고 항해하는 새 딱 한 번의 기지개로 우주는 저 끝을 만드는 걸 입에 문 너트는 절대 떨어트리지 않아 다른 새로는 살지 않아 길게 찢은 무화과빵을 입에 쑤셔넣을 때면 그리 외롭지 않았다 등 위에 선 눈.. 2018. 8. 18.
돈 세이 댓 코리도어 이스 낫 마이 워드 나의 시에 나의 단어가 없다는 것 어느 복도 한 끝에도 자기 방이 없다는 것 나를 나라고 쓰지 못한 모든 시들이 언젠가 자신에 의해 무너져 내리듯이 당신의 언어가 가본 적 없는 섬에서 흰 쌀밥을 짓듯이 복도의 닫힌 문들 사이에서 찾아낸 길이 나를 설명한다 혹은 내가 지나온 복도는 모든 닫힌 문들 사이에서 내가 걸어온 시간 항간에 떠도는 향으로 잠깐 바람개비가 돌아가듯 하나의 문을 여닫는 바람에 세상이 고요해진다 내가 끝내 나를 말해도 바람은 채워질 리 없고 친구가 연인이 동지가 죽음이 나를 만들어온 것을 알지만 그래서 때가 되면 떠날 것을 알지만 복도는 언제나 방이 아니었고 방이 없는 집에 복도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금요일 복도 어느 한 끝에서 돌아오고 있는 매일 언젠가 그 복도가 나의 시였다고 누구에게.. 2018. 8.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