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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시 1 눈물이 난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어제 내가 덮어 시큼한 이불에 폭 들어가 싸인 채 잠에 취한 얼굴 교재와 옷가지와 몸통보다 큰 가방을 풀어두고 밥을 먹으면 된다 레시피가 하나 늘어가면 소질 없던 일들이 용서가 된다 이미 지나보낸 시간을 맞는 것만 같다 한 점에서 거꿀린 뿔이 누군가에겐 우주가 될 것이다 참는 것이 대개 소용없었다 축 늘어진 팔이 아물러진다 달뜬 마음이 두 볼에 붙을 것처럼 보일러를 돌리자 아마 없었던 시간이 잊혀진다 마른 바닥에 아무것도 오르지 않는다 결을 나누는 일에 말을 덧대다가 해낼 수 없다는 걸 알아버릴 때 그저 눈물이 난다는 건 잘 알면서도 말할 수 없는 건 알 수 없는 일이라 한다 볕이 밝다 2018. 8. 18.
이변의 숲 숲의 나무일까 알 수 있다면 더 다가갈 수 있을까 아니야 도망가야 해 멈춘 것의 속도를 알 수 있을 리 없지 달이 밝을수록 깊은 숲엔 그림자가 짙고 높은 곳에 오르지 않으면 숲은 볼 수 없으니발이 떨어지지 않아 새벽에만 우는 잎의 이름은 무엇일까 평생 만나본 적 없는 이의 등본을 떼어보다 가고 싶지 않은 입구에 닿아버리는 것처럼 빛나지 않는 윤곽 가죽이 주어진 적이 없는 쇳물처럼 끝일지 시작일지 모를 나무들의 배치어제는 숲의 숨구멍을 찾았다 손을 땅에 짚고 귀를 대었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갑작스런 온기에 숨이 멎은 듯 소음 하나 없이 벌레 숨소리마저 빨아들인 채 이곳은 너에게 어울리지 않다고 차마 떨어지지 않은 입을 쭉 내밀어왔네 저 웅크린 몸에 손이 있을까 지나야만 갈 수 있는 곳은 자꾸만 죄를.. 2018. 8. 18.
돌잡이 가끔 네발동물의 척추를 가지는 날이 있어 몇 번을 두 발로 선다 앞발은 어디다 둘지 모른다 들어올려야 하는 허리 두 발로 선 게 아니다 네 발로 서선 두 발이 남은 것이다 무게가 실려 혹은 무게인 채로 몸을 기댄다 휘둘리는 척추 들기 전에 밀거나 짚었을 것 어쩌면 태초의 돌잡이란 없는 것 오래 누우면 바윗불 등에서 튀어오르듯 허리 위에 잡을 것을 두곤 손이 나가길 바라본다 나는 걷고 기울여 쥘 줄을 모른다 2018. 8.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