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日常

2020년 결산

by 김고미🐻 2021. 1. 3.

1

어떻게 쓰는지 한참 잊었고, 또 한참을 배워 어떻게든 써야 했다.

돌이켜보면 글은 궤적이었다. 싸이월드 다이어리 포도알 받던 시절이 있었고, 스물 즈음에는 평생 논문과 시를 쓸 것만 같았다. 어느 해 봄부터는 그런 것들은 전혀 쓰지 못했다. 그것이 정의이었든 죄책감이었든 대자보와 발제문, 기획안만 쓸 수 있었다. 한 해는 편지 외에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그다음에는 책을 썼고 뉴스레터를 썼다. 지금은 누군가의 메시지를 쓴다. 현황과 문제점을 담은 질의서를 쓰고 기자에게 조금이라도 눈에 띄려는 보도자료를 쓴다. 가끔은 법률안을 만들고 종종 기획안을 쓴다. 모두 다른 글이었다.

새로운 글쓰기를 배우는 시간은 글만으로는 결코 되지 않는다. 길거나 짧고 단촐하거나 섬세한 것의 차이라고 믿었던 때도 있었다. 그렇다기엔 작은 변화가 지나치게 버거웠고 피로했다. 나약한 것이 솜씨인지 자아인지 헷갈릴 만큼 새로운 글에는 새로운 세상이 필요했다. 그 모든 세상에 서있기가, 아니면 그 모든 세상에서 그 모든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기가 어려웠다. 어느 곳에서도 처음인 게, 언제까지 노련해지지 못하는 게 좀 억울했다. 임기응변으로 겨우 버텨온 것만 같다.

하나의 글도 끝맺지 못했다.

어떤 결론도 없으니 아무것도 인정할 수가 없었다. 너머를 응시하는 시선이 모든 것을 일그러트린다. 알아서 딱할 뿐이다. 하나의 글이라도 끝맺는 날이 있어야 한다. 

2

해왔던 일을 정리하고, 오래된 일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은 우울했고, 뭐라도 한 날은 덜했다. 올해 초에는 몸이 자주 아팠고 마음은 참을 수 없어 일기를 써야 했다. 퇴직금으로 가구를 사고, 컴퓨터를 들였다. 큰 맘먹고 운동을 시작했다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종종 지어먹던 밥도 이제 시켜먹기만 한다.

열등감과 호승심, 향상심으로 가득한 한 해였다. 모르는 건 다 알고 싶었고, 제대로 알려줄만한 사람은 없어서 더 악착같이 굴어야 했다. 제대로 하는 방법만 알고 싶었는데, 어떻게든 해내는 방법만 또 늘었다. 자신만 조급하다고 느낄 때가 더 많아졌다. 일을 빼고서 스스로를 정의할 수 있는 부분이 얼마나 될까 생각하면 숨이 막혔다. 인정은 모래지옥과도 같았다. 사소한 것들을 바라는 데 지쳐서 인정 따위 생각하지도 못할 만큼 잘할 수밖에 없겠다고 여러 번 마음먹었다. 괴로움만은 다르지 않았다.

피드 속 고양이 외에 무엇도 사랑하지 않았다. 

나에게 좋은 모든 일들은 싫은 걸 꾸역꾸역 해내야 다다를 수 있다는 것에 절망한다. 기대가 곧 외로움이었다.

3

다행인 건 알고 있다는 것이고, 불행인 건 그걸 알아야 되는 건 자신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나의 귀결에 누구도 없고 자신의 무지와 무능만 남는 것이리라. 그렇더라도 다시 굴러들어가는 건 질색이다. 필요한 건 필요한 것만큼만 얻으면 그만이리라.

오만해지지만 말자고 다짐한다. 

댓글